
공평하게
유세프 X 매니저
*유세프 '우리가 만난 지 100일' 대사 보이스가 나옵니다.
*둘은 연인이라는 설정입니다.
유세프의 출장이 끝나고 돌아오는 날, 매니저는 어김없이 그 날도 야근에 임하던 중이었다. 똑똑, 주인을 닮은 군더더기 없는 단정한 노크 소리가 매니저룸에 울린다. 매니저는 움직이던 손을 멈췄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누구인지 알 것 같아서 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열두 시가 지난 시각, 문 아래의 작은 틈새로 향긋한 모카 라떼 향이 피어오르면 종종 반가운 사람이 찾아왔다.
"유세프씨?"
"어떻게 알았어? 문 좀 열어줄 수 있을까, 매니저?"
앗, 네! 매니저의 다급함이 문 너머로 들려왔다. 일어나느라 뒤로 빠진 의자의 다리가 바닥을 마찰하는 소리와 종종걸음이 연이어 들려오면 유세프는 눈을 감고 기분 좋은 미소를 피웠다. 사소한 소음마저도 사랑스럽게 들릴 만큼, 두 사람 간의 공백이 꽤 길었다. 문을 열면 보이는 유세프의 두 손에는 커피잔이 각각 들려있었다. 매니저가 그의 손을 덜어주기 위해 손을 뻗었다.
"카라멜 라떼로 드셔도 되는데."
"매니저가 좋아하는 걸 마시고 싶었어."
"들어와요! 서류들 한쪽으로 치울게요."
여태 야근했구나. 내가 도와줄까? 서류가 치워진 공간으로 향긋한 커피의 향과 유세프의 다정함이 밀려왔다. 그의 다정한 말 한마디에 방금까지 혼자 불평을 늘어놓던 매니저의 입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크게 호선을 그렸다. 그와 별개로 고개는 가볍게 거절의 표시를 보였다. 유세프가 매니저의 옆으로 가까이 다가와 섰다. 의자에 앉아있는 매니저의 어깨에 자연스럽게 유세프의 손이 얹어졌다.
"괜찮아요! 제 일인걸요. 출장은 잘 다녀왔어요? 다치진 않으셨죠?"
"으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
"다치셨어요?"
그를 올려다보는 매니저의 눈썹이 절로 찡그려졌다. 유세프는 매니저의 표정변화에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렸다. 농담이야. 다친 데 없어. 잔을 책상에 내려놓고 손수 팔을 벌려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그에, 매니저가 일어서서는 눈을 흘기며 살피더니 검지 끝으로 방심하고 있는 허리를 꾹 찔렀다.
"윽, 간지럼은 넣어둬. 매니저."
"그런 걸로 장난친 벌이에요."
제가 늘 걱정하는 거 뻔히 아시면서. 유세프가 벌렸던 팔을 오므려 매니저의 어깨를 가벼이 끌어안았다. 품 안으로 훅 끼쳐오는 유세프의 향기는 여태 코끝을 맴돌던 커피 향을 밀어낼 정도로 좋아서 이어가려던 장난을 멈춰야만 했다. 귓가 바로 옆에 숨이 닿는다.
"선물도 사 왔는데. 봐주면 안 될까?"
"선물이요?"
응. 대답과 함께 숨이 멀어져서, 매니저는 뒤늦게 밀려온 부끄러움에 의식하던 제 귀를 손으로 매만졌다. 유세프는 주머니에서 세로가 좀 더 긴 작은 상자를 꺼내어 매니저의 손에 얹어주었다. 정갈하게 묶은 리본에서 유세프의 손길이 느껴졌다.
"혹시 지금 풀어봐도 돼요?"
"응. 매니저 생각하면서 산 거야."
뭐길래, 매니저가 들뜬 맘을 숨기지 못하고 리본 끝자락을 잡아당겨 상자를 열면 안에는 투명한 케이스에 담긴 립스틱이 눈에 담겼다. 분홍과 다홍이 적절하게 섞인 색이 어여뻐,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유세프가 슬그머니 뒤로 가서는 매니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제 쪽으로 끌어왔다. 다시금 유세프의 숨이 매니저의 귓가에 닿았다. 매니저는 그의 숨이 닿을 때마다 귓바퀴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내가 무슨 생각 하면서 사온 건지, 알아주면 좋겠는데."
"출장 다녀왔다고 이러는 거예요?"
나는 매번 가는데? 매니저가 부끄러움에 괜히 툴툴대는 목소리로 답하면 유세프는 알지, 하고 부러 귓가에 숨을 불어넣듯이 대답했다. 매니저의 몸이 움찔 반응하면 귀엽다는 듯 바람 빠진 웃음소리가 연이어 귓속을 파고들었다.
"매니저."
"네?"
"우리 벌써 백일 인 거 알아?"
"네!?"
하하, 표정 봐. 귀여워. 이럴 줄 알았다는 듯한 여유로운 웃음에도 매니저는 입술을 벌린 채 당황한 얼굴을 지우지 못했다. 아니 벌써요? 그럴 리가 없는데! 매니저가 팔만 뻗어 책상 위에 얹어둔 탁상 달력을 가져와 날짜를 확인했다. 일정들을 좇던 눈이 금세 망연자실해져선 달력을 잡고 있던 손으로 얼굴을 감싸내었다.
"흐아, 날짜를 착각했어요…. 다음 주인 줄 알고…."
전 아직, 선물 못 샀는데. 매니저의 풀 죽은 목소리에 유세프가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요즘 야근으로 바빴잖아. 나도 출장 다녀왔고. 토닥이듯 속삭이는 목소리가 매니저의 어깨에 묻어진다. 유세프의 숨이 한참을 머무르다가 드러나 있는 목덜미에 가벼운 입맞춤을 놓고서야 천천히 멀어졌다. 짙은 회색빛 눈동자가 목덜미에서 떨어질 줄 몰랐다.
"다른 선물도 괜찮은데."
"다른 선물이요?"
유세프의 시선이 이번에는 매니저의 입술에 노골적으로 머물렀다. 매니저가 그를 느끼고 설마, 정말요? 하고 표정으로 물어보면 유세프는 그저 조용하게 웃을 뿐이었다. 매니저는 알고 있다. 그는 늘 이렇게 사람 좋은 얼굴로 긍정의 대답을 해왔다는 걸. 부끄러움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스멀스멀 밀려온다. 매니저가 선물로 받은 립스틱을 손에 쥐고서 물었다.
"이걸로요?"
"그럼 더 좋지."
"진짜, 이럴 때 보면 유세프씨도 짓궂어요. 알고 있죠?"
"하하, 칭찬으로 들어도 될까?"
"못 말려. 그래서, 어디에요?"
"어딜까?"
맞춰볼래? 유세프의 시선이 입술에 진득하니 붙어있음에 매니저는 할 수 없다는 듯 웃었다. 립스틱 뚜껑을 열고 거울 없이 어떻게 바를까 고민하다 유세프를 바라본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매니저의 눈꼬리가 휘었다. 어느새 유세프의 손을 맞잡듯 립스틱을 건네주었다. 둘에게 야근과 밀려있는 서류는 이미 뒷전이었다.
"발라주면 해줄게요."
매니저, 이런 취향이었어? 유세프의 웃음소리와 함께 매니저의 볼이 큰 손에 가득 들어찼다. 입술 위로 립스틱의 감촉이 닿는다. 립밤만 발라져 있던 입술을 색으로 채워내는 유세프의 서툰 손짓과 집중한 표정이 귀엽지만 민망할까 싶어 눈을 감은 채로 웃음을 꾹 참았다.
"다 발랐어요?"
움직이던 손이 멈추면 매니저가 틈을 파고들어 물었다. 유세프는 매니저의 입술을 꼼꼼히 살피고서야 응. 짧은 대답을 놓았다. 매니저가 눈을 뜨면 유세프가 자신의 입술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어서, 괜히 부끄러운 기분이 들었다.
"계속 볼 거에요?"
"하하, 미안. 생각보다, 색이 더 잘 어울려서 말이야."
"어디부터 해줄까요?"
"음~ 매니저가 원하는 데에 해줬으면 좋겠는데."
우리 사귀는 거 들킬지도 모르는데요? 매니저의 짓궂은 표정이 유세프에게는 귀엽게만 느껴졌다. 이참에 그냥 광고하고 다닐까? 유세프의 답에 매니저가 정말 못 말린다며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잠깐의 정적 끝에 매니저는 아무것도 들지 않은 반대 손으로 유세프의 볼을 감싸 쥐었다. 손 끝에 긴장이 서려 미약하게 떨렸다. 조금의 머뭇거림 뒤에 감싸지 않은 볼에 쪽, 입을 맞추고 떨어진다.
"푸핫."
"이상해?"
"아뇨, 좋아요."
자신의 입술 모양이 적나라하게 찍혔음에도 부끄러움보다는 그저 행복해서 웃음만 났다. 여기도 할래요. 매니저는 손을 내려 유세프의 어깨에 얹고서 감싸고 있던 볼에도 입술을 놓았다. 양 볼에 입술 자국이 선명하게 찍힌 그의 얼굴은, 생각보다 보기 좋아서 매니저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매니저가 더 즐기는 거 같은데, 내 얼굴이 어떤지 궁금하네."
"이마에도 하면 웃길까요?"
"하고 싶으면 해. 매니저가 해주는 건 다 좋으니까."
"정말요? 나 정말 하고 싶은 데에 다 해도 돼요?"
"응. 대신 마지막엔 여기에 해줘."
유세프가 자신의 검지로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웃어 보이면 매니저는 알겠다며 다시금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내었다. 매니저의 허리를 감싸 안은 팔과 눈을 감은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유 변호사님, 혹시 이런 건 취향 아니세요?"
"하하, 매니저한테 그 호칭을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매니저가 이마며 콧등에 쪽, 쪽 입술을 놓다가 장난스레 목덜미에도 입술을 놓았다. 아까 유세프가 한 행동을 따라 하는 것처럼 장난기가 그득한 행동이었다.
"너무 취향이라 되려 걱정인 걸."
"그래요? 그럼 유세프씨도 발라볼래요?"
"음, 나도?"
"응! 이리 와요!"
매니저의 신난 손놀림이 립스틱 끝으로 느껴진다. 유세프는 입술에 닿는 생경한 느낌에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미묘한 느낌이네. 유세프의 말에 매니저가 느낌 묘하죠, 하고 곧장 물어봤다. 서로의 목소리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럼 공평하게 할까?"
"공평하게요?"
응, 이렇게. 유세프는 매니저의 목을 가볍게 감싸 안고서는 매니저가 했던 것처럼 양 볼을 시작으로 이마, 콧등을 지나 목덜미까지 느릿하게 내려가면서 입술을 찍었다. 그의 입술이 옮겨질 때마다 매니저는 유세프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을 꾹 쥐었다. 사소한 반응들이 연애 초기 때와 다를 게 없어서, 백 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명계라 더욱 더디게 흘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와 함께한 시간을 재어보는 일은 한 번 멈춰버린 시간 선을 잊는 방법이기도 했다.
"진짜 공평하네요."
"그렇지?"
유세프는 자신의 입술 자국으로 가득한 매니저의 얼굴을 한참을 눈에 담다가 못 참겠다는 듯 허리에 팔을 둘러 끌어왔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맞닿으면 립스틱 때문에 맞닿은 곳이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푸흐, 서로의 입술 새로 웃음소리가 흘렀다.
"이것도, 색다르고 좋네요."
"이젠 립스틱 말고 나한테 집중해줘, 매니저."
알겠어요. 투정 어린 유세프의 목소리에 매니저는 자연스럽게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았다. 쪽, 쪽, 둘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지는 짧은 순간마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잔뜩 담긴 소리가 매니저룸을 메워갔다. 사이사이 둘의 웃음소리가 퍼지고, 다시금 입 맞추는 소리가 달콤하게 새벽을 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