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투른 청혼
시안 X 매니저
*시안과 매니저가 사귀고 있습니다.
*현대AU, 둘이 동갑이라는 설정.
"여기!"
매니저가 빨간색으로 물들인 차를 보며 손바닥을 흔들어보인다. 그 앞에 차가 멈춰서고 보조석 창문이 내려갔다. 먼저 와 있었냐? 시안이 창문 너머로 허리를 약간 숙인채 물었다. 운전대를 잡은 한 손에는 심플한 모양의 시계가 걸려있고, 몸에 딱 붙는 정장은 깔끔하게 다려져 단정한 모양새. 항상 가볍게 풀어둔 머리칼은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알려주듯 한쪽으로 넘겨내었다. 창문 너머로 다가온 매니저는 웃으며 시안의 복장을 가볍게 훑었다. 자신도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었다지만, 남자들은 정장을 입으면 저렇게 테가 달라지는구나. 매니저는 익숙하게 보조석 문을 열고 앉았고, 곧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시안이 손을 뻗어 안전밸트를 끌어와 매어주는 손길을 익숙하게 받는다. 시안은 제자리로 돌아와서는 한쪽으로 넘긴 머리칼이 어색한 것처럼 괜히 매만지면서 룸미러로 매니저를 살폈다. 평소처럼 올려묶은 머리가 아니라 반정도 올려묶고, 반은 풀어내린 갈색 머리칼이 귀엽다. 시안은 속으로 생각한 것에 결국 손등으로 입술을 누르고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어깨에 두른 하얀 숄도, 그 아래로 차려입은 분홍색의 미니 드레스도. 평소보다 조금 짙은 화장마저도 잘 어울려서 어여쁘기만 하다.
"시안 어디아파?"
"그럴리가 있냐, 늦겠다. 가자."
시안은 핸들을 잡고서 괜히 헛기침을 했다. 예쁘다고 말해주고 싶은데, 쉽게 벌리지 않는 입술이 야속했다. 솔직하지 못한 자신이 이럴때 가장 싫었다. 작은 한숨을 반대편으로 뱉고는 네비게이션에 찍히는 길을 보며 엑셀을 가볍게 밟았다. 네비게이션 도착지에 적힌 곳은 결혼식장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네."
"그러게. 스물 후반이 이렇게 빨리 올줄은 몰랐는데."
"시안도 곧 데뷔 10주년 아니야?"
"이제 아는 사람만 아는데 뭘 그러냐, 그러니까 너랑 같이 결혼식도 가지."
"그렇게 말하니까 꼭 너랑 결혼하는 것처럼 들린다?"
"ㅁ, 무슨, 우, 우리가 연애를 얼마나 했다고!"
뭘 그렇게 정색을 해? 서운하게. 매니저는 짐짓 토라진 표정으로 말했지만 입술은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둘이 얼굴을 알고 지낸지는 십 년, 연애한지는 이제야 이 년쯤이었다. 시안의 매니저로 시작했던 관계가 어느새 가장 가까워져서 연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소문으로 돌기 전 시안이 인정을 해버리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공개연애를 하게 되었다. 우려했던 것과는 별개로 매니저는 굳건한 사람이었고, 그덕에 시안은 매니저와의 연애에 떳떳할 수 있었다. 일반인과 아이돌의 연애이기에 금방 깨어질 것 같던 위태로움도 그녀이기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고, 시안은 자랑스럽게 장담할 수 있었다.
"축의금은 잘 챙겨왔지?"
"어. 여기."
시안이 신호등 앞에서 차를 세운김에 품에서 하얀 종이봉투를 꺼내어 내밀었고, 매니저는 봉투를 받아 실수없이 금액을 챙겼는지 두 번, 세 번을 세었다. 사소한 것에도 꼼꼼하게, 실수가 없도록 확인하는 것은 매니저가 된 후에 생긴 습관이라고 했다. 시안은 그런 매니저가 멋있다고 늘 생각했고, 이런 순간을 발견할때면 괜히 웃음이 났다. 마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받은 것 같아서. 그렇게 매니저의 삶에 자신의 흔적이 남겨지는 것만 같아서 말이다.
"좋아, 액수는 맞고..아, 이름 써야지!"
매니저는 가방에서 펜 하나를 꺼내어 종이 위에 시안와 자신의 이름을 정갈히 써내었다. 둘의 이름이 나란히 쓰여진 것이 마냥 좋은 듯 시안은 핸들을 돌려내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청첩장에 쓰인다면 몇 백 배는 더 행복하겠지. 시안의 뇌리를 스쳐가는 생각에 그의 귀는 옅게 물들어갔다. 아까는 부끄러워 정색하듯이 소리를 쳤지만, 역시 매니저가 아니면 상상할수가 없다. 매니저의 웨딩드레스……. 시안은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다가 웃음을 주체할 수 없어 푸슬푸슬 입으로 바람소리를 내었다.
"뭐가 그렇게 웃겨?"
"내가 언제 웃었다고 그러냐. 네 글씨가 못생겨서 그런가보지."
"네 작사노트에 써진 글씨보단 훨~씬 나을텐데?"
"야! 너..너 내 작사노트 봤어?!"
"네가 취해서 보여준 거 생각 안나는구나?"
"ㅁ, 뭐?"
"매니저 너는 내 바다야~"
"캭! 그만 안하지!?"
시안은 클락션에 머리를 박고싶은 기분이었지만 침착하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브레이크를 걸고 매니저를 노려봤다. 매니저는 생글 웃으며 안전밸트를 풀고 문을 열었다.
"장난 그만칠게, 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너..침대에서도 그러면 나 진짜 화낸다?!"
"푸하하, 그건 봐서~"
"아 약속하라고!"
매니저가 도망가듯 문을 닫고 가자 시안이 급하게 안전밸트를 풀고 따라나갔다. 삑삑, 자동차 문이 잠기는 소리 뒤로 매니저를 따라가는 시안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
"둘이 같이 와줬구나? 정말 고마워. 너넨 결혼 언제해?"
"시안이 나랑 연애를 오래 안해서 안한대."
"야! 내가 언제..!"
"오늘 부케 네가 받아야겠는데? 시안이 청혼하게~!"
시안이 매니저 친구의 말에 어깨를 움찔하고는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손을 떨었다. 작은 케이스 하나가 주머니 속에서 반바퀴를 돌았다. 벨벳의 감촉이 시안의 손끝을 간질였다.
"그런 거 없어도 알아서 때 되면 할거거든!"
진짜 부끄럼쟁이라니까, 여자들의 웃는소리를 뒤로하고 시안은 바깥으로 나와 준비되어있던 냉커피 한 잔을 손에 들고서 입에 갖다대었다. 망했다. 정말 망했다. 주머니 안에 넣어둔 반지케이스를 굴리면서 시안은 이마를 콩, 콩 벽에 박았다. 오늘 돌아가는 길에 청혼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돗자리가 깔리면, 부끄러워서 말도 못꺼낸단 말이다. 죽을상으로 벽에 이마를 박은채 있으려니 뒤에서 매니저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안? 왜 그래?"
"아무것도. 인사는 다 했냐?"
"응. 식장 들어갈까?"
"자."
시안이 손바닥을 내보이며 매니저에게 건네면, 매니저는 입꼬리를 말아올리며 잡았다. 따듯한 온기가 마주한다. 이 손을 잡고, 이대로 결혼식의 주인공이 된다면 좋겠다. 오늘따라 유난히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게 되는 건 주머니 속에 숨겨둔 반지 때문이겠지. 두 사람의 발걸음이 조금은 왁자지껄한 식장 안으로 사라지면 결혼식을 시작하는 방송이 안내되었다.
***
"으아, 피곤하다."
시안의 차 안은 히터를 미리 켜놓은 덕에 공기가 따듯해 긴장이 풀린다. 밀려오는 피로에 매니저가 시트에 몸을 기대며 숨을 내쉬었다. 하루종일 신고있던 불편한 구두는 벗어서 그 위로 발을 얹어두었고, 품에는 신부가 던져주었던 부케가 안겨있었다. 진짜로 받을줄은 몰랐는지 매니저는 연신 오밀조밀 어여쁘게 모여있는 꽃잎을 괜히 어색하게 매만졌다. 흘긋, 시안을 살피는 눈에 조심스러움이 담긴다. 부케를 받아서 그런가 괜히 소문같은 미신에 휘둘려 청혼을 해야한다고 부담을 느끼면 어쩌나 싶은 걱정이 드는 것이었다. 부케를 받고 여섯달 안에 결혼을 못하면, 삼 년간 결혼을 못한다고 했던가. 설마 그런 미신을 믿는 건 아니겠지. 시안이 차에 시동을 걸지않고 핸들만 노려보는 것에 매니저는 그의 앞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 밀었다.
"시안? 안 가?"
"어, 그게, 그.."
대답을 못하고 어물쩡 입을 닫아버린 시안에게 매니저의 시선이 닿았다. 시안은 숨을 들이키더니 눈을 꾹 감고선 주머니에서 꼼지락거리던 것을 꺼내어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 끝이 눈에 훤하게 보였다. 버건디 색상의 벨벳재질이 반쪽을 갈라 열리면, 시안의 눈동자를 닮은 분홍빛 보석이 박힌 반지 한쌍이 드러났다.
"ㄱ, 그 내 솔로곡 가사 다 너 생각하면서 쓴거 아냐?! 그, 네가 너무 좋아서. 가사 쓰려고 하면 네 생각만 나서…청혼하는데 나 뭐래냐…! 네가 부케, 받을줄은 몰랐는데…나 오늘 원래!?청혼 결심하고, 챙겨온거니까 다른 생각은 하지말고!"
당황하고 긴장하면 목소리가 올라가곤 했는데, 시안은 자신의 넓은 차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목소리를 내었다. 매니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시안을 바라보면, 시안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귀며 볼, 목까지 죄다 발갛게 물든게 너무 잘보여서 매니저는 웃음을 꾹 참았다.
"내가 너한테 받은 게 많고, 또…뭐냐, 내가 부족한 거, 정말…많은데. 이런…나랑 결혼해줄 의향……있냐?!?앞으로는 좀 더 솔직해지도록 노력해볼게. 너한테만큼은, 진심으로. 항상…좋아하고 있어."
진중하게 맞춰오는 분홍빛 눈동자가 일렁이는 해수면처럼 고요하게 흔들린다. 긴장해서 더듬어지는 말, 얼굴이며 목에 피어오른 긴장감 때문에 흐르는 식은땀, 가만히 있질 못하고 덜덜 떨리는 손. 시안다운 청혼이었다. 완벽보다는, 서투른 진심을 전해올 때 더 아름다운. 그를 사랑하게 된 모습 그대로. 매니저는 밀려오는 웃음을 결국 참지못해 푸흐흐 소리를 내어 웃고는 아하하! 하고 고개를 젖혔다. 시안이 그에 더욱 당황해서는 ㅇ, 야 나 진심이거든!? 하고 덧붙였지만 잠깐 몇?분간은 그녀의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매니저는 너무 웃은 나머지 눈꼬리에 매달린 눈물을 뒤늦게 검지손으로 쓸어내고는 반지로 시선을 내렸다. 사이즈가 조금 더 큰 반지를 빼어 그의 손을 끌어온다. 천천히 시안의 왼손 약지에 반지가 끼워지고 매니저의 허리가 숙여지면, 반지에 박혀있는 보석 위로 매니저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조금 더 도톰한 아랫입술의 감촉이 시안의 손가락에 간질거림을 두고갔다.
"…원래 청혼은 반지 껴주면서 하는 거 알지? 이런것도 몰라서 어떡해? 나랑 결혼해야지."
"ㄴ, 너…이렇게 채가기 있,"
"나랑 결혼하자, 시안."
"야……!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대답은 여기로 해줘."
매니저가 시안에게 남은 반지 하나를 쥐어주며 입술을 내밀고는 눈을 감았다. 시안이 윽, 하는 신음을 낸 것 같지만 매니저는 그저 이 순간이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입가에 번진 미소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심, 그의 청혼을 너무도 기다렸기에.
"답 안해줄거야? 나 눈 뜬다?"
"아 해! 한다고…!"
손가락 끝에 차가운 반지의 감각이 닿고, 입술에는 따듯한 온기가 닿는다. 시안의 손이 서로 나눠낀 반지가 닿도록 깍지를 껴와 손바닥이 마주하고, 긴장한 숨을 머금은 입술은 느릿하게 맞물린다. 숨은 서로의 입안에서 부서지고, 그저 따듯함만이 남는다. 시안이 남은 손으로 시트를 젖히면, 매니저의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잠시 둘의 입술이 떨어졌다. 시안의 얼굴에 온갖 감정이 섞이다가 결국 행복함으로 갈무리 되었다. 매니저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늘 옆에서 바라보았던 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가장 행복한 표정을 봤다. 시안은 매니저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놓고는 떨어졌다. 가슴께 위로 깃털이 내려앉은 것만 같아서 매니저는 꾹, 심장쪽을 움켜쥐었다.
"사랑해."
시안의 고백과 함께 그의 입술이 다시금 맞물리면, 매니저는 시안의 목을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둘의 왼손 약지에는 분홍빛으로 물든 행복이 반짝였다.